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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 신경숙

opoi 2023. 2. 20. 18:00

22.01 도서관 

 
외딴방
제11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자전적 장편소설.한 외로운 영혼의 진지한 행로를 따뜻하게 포용하고 있는 감동적인 노동소설이자뛰어난 성장소설.
저자
신경숙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1999.12.06

 

열여섯에, 그 파란 대문집 마루에 앉아 오빠의 편지를 기다리다가 내 발바닥을 쇠스랑으로 찍어버렸던 열여섯에, 나는 생은 독한 상처로 이루어지는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그 독함을 끌어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순결한 한 가지를 내 마음에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그걸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겠다고. 그러지 않으면 너무 외롭겠다고. 그저 살고 있다가는 언젠가 다시 쇠스랑으로 또 발바닥을 찍어버리겠다고. 
/24쪽. 

잘 있거라. 나의 고향. 나는 생을 낚으러 너를 떠난다. 
/27쪽. 

작별은 상대방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새삼 깨닫게 한다. 저이가 저런 모양새의 눈을 갖고 있었던가, 하고. 
/27쪽. 

글쓰기란, 그런 것인가. 글을 쓰고 있는 이상 어느 시간도 지난 시간이 아닌 것인가. 떠나온 길이 폭포라도 다시 지느러미를 찢기며 그 폭포를 거슬러 돌아오는 연어처럼, 아픈 시간 속을 현재형으로 역류해 흘러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 쓰는 자에겐 맡겨진 것인가. 연어는 돌아간다. 뱃구레에 찔린 상처를 간직하고서도 어떻게든 다시 목숨을 걸고 폭포를 거슬러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래 돌아간다. 지나온 길을 따라, 제 발짝을 더듬으며, 오로지 그 길로. 
/38쪽. 

문학은 삶의 문제에 뿌리를 두게 되어 있고, 삶의 문제는 옳은 것과 희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옳지 않은 것과 불행에 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희망 없는 불행 속에 놓여 있어도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이질 않은가. 때로 이 인식이 나로 하여금 집도를 포기하게 한다. 결국 나는 하나의 점 대신 겹겹의 의미망을 선택한다. 할 수 있는껏 두껍게 다가가자고, 한겹 한겹 풀어가며 그 속에서 무얼 보는가는 쓰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고, 그건 읽는 사람의 몫이라고, 열 사람이 읽으면 열 사람 모두를 각각 다른 상념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게 좋겠다고, 그만큼 삶은 다양한 거 아니냐고, 문학이 끼어들 수 없는 삶조차 있는 법 아니냐고. 
/75쪽. 

내부의 진흙뻘 속에서 무엇이 힘겹게 고개를 들며 소리친다. 뭘 하려는 게야? 고만고만한 세부사항이나 찾아내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제발 연대순으로 줄 맞춰 요점 정리하려고 들지 마. 그건 점점 더 부자연스러워질 뿐이라구. 설마 삶을 영화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삶이 직선으로 줄거리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198쪽. 

최홍이 선생이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 대신 시를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으면 나는 시인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랬었다. 나는 꿈이 필요했었다. 내가 학교에 가기 위해서, 큰오빠의 가발을 담담하게 빗질하기 위해서, 공장 굴뚝의 연기를 참아낼 수 있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209쪽. 

그때의 기억을 복원시켜 내 말문을 틔어보고 내 인생의 폐문 앞에서 끊겨버린 내 발자국을 연결시켜줘보기로. 
/210쪽.

그녀는 늘 희미했었다. 모든 일상이 턱밑에, 귀밑에 숨어 있는 주근깨처럼 소리가 없었다. 
/221쪽. 

이 글이 완성되면 나는 온전히 다른 열정 속으로 건너갈 수 있을까. 간헐적으로 나를 괴롭히던 내 안의 난폭함과 야만성 무질서와 섬약함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을까. 
/240쪽. 

어디에 가서 앉아야 할지 모를 어설픔이 남긴 마음의 상처.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러서도 사람 많은 곳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맨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그곳에 가면 내 자리는 있을까. 어설퍼질 것 같으면 안 가게 돼버리는 성장하길 멈춘 무의식. 
/308쪽. 

 내가 이 학생들을 맡게 되면서 가졌던 선입견은 이 학생들이 ‘불쌍하고 힘든’ 아이들이어서 보살펴줄 게 많을 거란 생각이었습니다. 하루종일 일하고 저녁에 공부하는 아이들이란 생각만으로도 왠지 가슴이 아픈 그런 대상이었지요. 그런데 학생들이 쓴 자기소개서를 읽는 순간 이러한 내 생각은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글엔 여느 주간학생들과 똑같은 삶의 희망과 절망, 포부, 자질구레한 일상의 즐거움들이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나는 전 근무지가 소위 ‘명문’ 여고였고, 영등포여고 주간에서도 일 년 있었기 때문에 세 그룹의 학생들을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서로 다른 환경의 학생들의 꿈과 희망과, 절망의 양이나 질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물론 부유한 지역의 많은 학생들은 경제적 물질적으로 풍요롭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쓰고 있는 “나는 일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라든가 “의사가 되고 싶어요” 하는 꿈이, 산특 학생들의 “나는 미용기술을 배우고 싶어요” “돈 모야 작은 선물가게를 낼 거예요” “전문대학에라도 꼭 가고 싶어요” 하는 꿈과 질적인 면에서 다르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풍요로운 물질 속에서 부모의 무관심으로 병든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아빠가 술주정이 심한 게 싫어서 가출하다시피 서울로 왔어요. 하지만 요새는 아빠가 착해지셔서 추석때면 선물 사갖고 찾아가요” 하는 산특 학생들의 삶도 비교가 됩니다. 

 부유한 지역에서 모든 게 풍요로워도 입시에 대한 중압감으로 늘 지쳐 있는 학생들의 표정이 떠오릅니다. 반짝이는 동그란 눈을 가진 인형 같은 모습의 한 학생은 늘 어딘지 불안하고 안타까운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학벌은 좋은데, 자기는 명문대를 갈 수가 없어 엄마가 늘 심장이 두근거리고 밖에 나가는 게 창피하다고 한답니다, 

 체력장을 할 때면 사수생들이 재학생들 뒤에 풀죽어 서 있습니다. 그 당시는 체력장 한 번 한 것으로 세 번을 쓸 수 있었거든요. 이들은 어쩌면 그리도 착하고 순해 보이는지요. 대개 성적이 거의 바닥이었던 학생들입니다. 딸을 외국으로 내돌리기는 겁나고, 고졸인 건 싫은 부모들이 계속 학원을 보내는 겁니다. 이들이 좀 어려운 집안에 태어났으면 오히려 건강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텐데 말입니다. 신성생은 외딴방에서 웅크리고 자던 버릇 때문에 아직도 그런 자세로 잠에서 깨어난다고 했습니다. 이 학생들은 넓은 방, 푹신한 침대에서 잠들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들의 정신은 매일 아침 얼마나 더 웅크린 모습으로 깨어날까요. 
/333-334쪽. 

“길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에이 재수없다.’ 그러고 가는 거야. ‘돌맹아, 너 왜 거기 있었냐.’ 그렇게 소리치고 있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 
/339쪽. 

그러나 도저한 삶. 인생은 모두를 주지도 모두를 가져가지도 않는다. 그 소리소리들 속에 노트를 펼쳐놓고 창에게 편지를 쓰게 함으로써, 다정한 인기척을 느끼게도 해줬으니. 
/353쪽. 

나도 그랬을까? 헤겔을 읽는 미서처럼, 프루스트나 서정주나 그런 사람들, 김유정이나 나도향이나 그런 사람들, 장용학이나 손창섭이나 혹은 프란시스 잠, 그 사람들을 읽고 있는 그때에만, 무슨 뜻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이 남긴 찬란한 문구들을 부기 노트 귀퉁이에 옮겨놓고 있는 그때에만, 그 교실의 얼굴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책이, 그중의 소설이나 시 같은 것이, 나를 그 골목에서 탈출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까. 
/375쪽. 

나를 가엾이 여기지 마. 네 가슴속에서 오래 살았잖아.
/487쪽. 

어디든지 가던 길을 멈추고서 처음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나의 습성이 때로는 삶을 벗어난 허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같이 든다. 
/495쪽. 

 그랬다. 나는 침묵으로 내 소녀 시절을 묵살해버렸다. 스스로 사랑하지 못했던 시절이었으므로 나는 열다섯에서 갑자기 스물이 되어야 했다. 나의 발자국은 과거로부터 걸어나가봐도 현재로부터 걸어들어가봐도 늘 같은 장소에서 끊겼다. 열다섯에서 갑자기 스물이 되거나 스물에서 갑자기 열다섯이 되곤 했다. 과거로부터는 열여섯을 열일곱을 열여덟을 열아홉을 묵살하고 곧장 스물로, 현재로부터는 열아홉을 열여덟을 열일곱을 열여섯을 묵살하고 곧장 열다섯으로 건너뛰어야 했으므로 그 시간들은 내게 늘 완전히 드러난 햇빛이나 바닥을 완전히 숨긴 우물 같은 공동으로 남았다. 오랫동안 나의 소녀 시절이 나에게 남긴 가족 이외의 타인과의 관계는 무無였다. 나는 그녀들을, 희재 언니를 기억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너무나 선명한 관계들 앞에서 나는 상실증에 걸린 환자처럼 행동했다. 

 모래펄에 남겨진 내 발자국의 자취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지금은 그녀들, 어디서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 오랫동안 그녀들을 생각하면 삶이란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고독을 느껴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녀들은 내 속에서 늘 현재로 작용했다. 그녀들은 내가 스무 살 이후로 만났던 삶의 누추함을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얼토당토 않은 욕망의 자리에서 내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성찰이 되어주기도 했다. 모래펄에서 몸을 일으켜 내 발짝에 내 발짝을 대보며 모래펄을 걸어나왔다. 오늘, 이 해변에 찍힌 나의 발자국은 외딴방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내가 도망치듯 빠져나와 다시 돌아가지 못했던 장소로. 오늘, 나에게 가장 뚜렷한 현재인 오늘, 여기에 찍힌 내 발자국을 따라가면 스물에서 더이상 멈칫대지 않고 곧바로 열아홉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다시 열다섯에서 열여섯으로 되돌아나올 수도 있으리라. 이 길이 온전히 외딴방을 걸어나올 수 있는 길이었다. 이 길이 내게 끊임없이 기척을 내었다. 발바닥에 꾹꾹 힘을 주며 모래펄을 한발짝 한발짝 걸어나왔다. 오랫동안 나에게 중요한 모든 운명의 모습은 희재 언니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밀물이었고 썰물이었다. 그녀는 내게 희망이었고 절망이었다. 그녀는 내게 삶이었고 죽음이었다. ··· 이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 
/509-5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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