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ayeon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본문
22.01 밀리의 서재
- 저자
- 룰루 밀러
- 출판
- 곰출판
- 출판일
- 2021.12.17
혼돈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가’ 하는 시기의 문제다. 이 세계에서 확실한 단 하나이며,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주인이다.
자기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전혀 없을 때에도 자신을 던지며 계속 나아가는 것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죄악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바보의 표지가 아니라 승리자의 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목적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매번 숨 쉴 때마다 자신의 무의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거기서 자기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행복은 행하고, 돕고, 일하고, 사랑하고, 싸우고, 정복하고, 실제로 실행하고, 스스로 활동하는 데서 온다.
활동적인 야외 생활과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건강과 함께 영혼의 고통은 사라진다. 그는 우리 몸이 일으키는 전기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 어디에도 바로 여기, 지금, 오늘만큼 하늘이 파랗고 풀밭이 푸르고 햇빛이 밝고 그늘이 반갑게 맞이해주는 곳은 없다.
당신이 밟고 선 그 땅뙈기가 이 세상에서, 아니 그 어느 세상에서도 당신에게 가장 달콤한 기쁨을 주는 땅이 아니라면 당신에게는 희망이 없다.
절망이 청소년기에 자연스럽게 거쳐 가는 단계라고 생각하기는 해도 그런 감정을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경멸한다. 그는 그런 사람들은 “축 늘어진 정신의 유행”을 따르고, 문학 속 “슬픈 왕들”을 흉내 내는 게으른 모방자들이며, 그들이 “지옥불 같은”숨결을 내뿜는다고 비난한다. 죽음의 냄새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기를, 그 모든 것의 허망함을 곱씹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몹쓸 짓인 이유는, 진화가 선물한 그 소중한 전기를, 너무나 많은 경이로운 감각들을 느끼고 너무나 많은 과학적 수수께끼를 푸는 데 써야 할 그 신성한 이온들을 실존적 탐구라는 하수구로 흘려보냄으로써 글자 그대로 “몸이 아직 살아 있는데도 죽은 사람”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그는 그날 하루의 강의를 내가 풀고자 했던 그 난제, 바로 과학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바쳤다. “이러한 인생관은 염세주의로 이어지는가?” 강의가 끝나갈 무렵 그는 학생들에게 일종의 마술 같은 주문을 걸었다. 혼돈이 주는 냉기를 떨쳐버리는 한 가지 방법을 말이다. 특별한 활자체로 된 여덟 개의 단어.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나는 경악했다. 이거였다. 내 아버지가 즐겨 쓰는 바로 그 비법. 오늘날까지도 아버지 책상 위 액자 속에 담겨 있는 바로 그 단어들. 다윈이 외친 투쟁의 권유. 내 아버지와는 다르게—반항적이고, 희망과 신념이 가득한 사람으로—보였던 데이비드지만, 결국 그에게도 내게 알려줄 새로운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늘 들어왔던 말을 또다시 상기시키는 것밖에는. 장엄함은 존재해. 네가 그걸 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창조하기 시작한 이래, 사람이 노력해서 이룬 결과가 그토록 처참하게 파괴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엄청난 규모의 재앙 앞에서 그렇게 푸념하지 않는 인간을 만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평범한 한 남자가 자기 자신에게 그토록 희망차고, 그토록 용감하며, 그토록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는 모습을 보여준 일은 그전엔 결코 없었다. 왜냐하면 결국 살아남는 것은 사람이고,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도 사람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불에 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 지진과 화재가 준 교훈이다. 그가 지은 집은 무너지기 쉬운 카드로 지은 집이지만, 그는 집 밖에 서 있고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다. 위대한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보다 더 경이로운 일은 도시가 되는 것이다. 도시란 사람들로 이루어지며, 사람은 영원히 자신이 창조한 것들보다 높이 올라가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보다 더 위대하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이 말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 결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다. 사악함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그가 경고했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 자기 경력을 바쳐 맞서 싸워왔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자, 그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가치가 있다고 말했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다.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까! 그조차도 절망에 완전히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그 거짓말이 진실이기를 믿어야만 했던 것이다.
임상심리학자들은 이상한 일들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볼 때 더 건강한 환자들, 인생을 더 쉽게 살아가는 사람들, 좌절을 겪은 뒤에도 재빨리 회복하는 사람들, 직업과 친구, 연인을 얻고 인생이라는 회전목마에서 황금기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장밋빛 자기기만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1970년대부터 연구자들은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실험을 시작했다. 실제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매력적이고, 남들을 더 잘 도우며, 더 지적이고, (주사위를 던지거나 복권 번호를 뽑는 것 같은) 우연한 사건들을 가능한 정도보다 훨씬 더 잘 통제하는 사람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꾸준히 확인됐다. 그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볼 때도 자기가 실패한 것보다 성공한 것들을 훨씬 더 쉽게 기억해냈다. 미래를 내다볼 때는 친구들이나 급우들보다 자신이 성공할 가능성을 훨씬 더 크게 잡았다.
반면 그토록 칭송받던 정확한 인식이라는 미덕을 지닌 사람들은 어떨까? 짐작했겠지만 그들은 병적인 수준의 우울증에 걸렸다. 그들은 살아가는 일을 힘들어했고, 좌절을 겪은 뒤에는 회복이 더 어려웠으며,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종종 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그릿이란 여러 특성들이 섞인 칵테일 같은 것이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좌절을 겪은 뒤에도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능력,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능력, 또는 더크워스의 표현을 빌리면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노력과 흥미를 유지하는 것” 말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지속적으로 오만을 복용하는 것이야말로 실패할 운명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보여주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다정하게 흔들어주는 손, 연필로 그린 스케치, 나일론 실에 꿴 플라스틱 구슬들—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점들이 내가 우생학자들에 대해 그토록 격노하는 이유다. 그들은 이런 그물망의 가능성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들은 애나와 메리 같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고, 자신들이 받은 빛을 더욱 환하게 반사할 수 있는 이 실질적인 방식들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메리는 애나가 없었다면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 이런 것. 이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죽는 것과 사는 것의 차이. 그게 아무 가치가 없다고?
바로 그때 그 깨달음이 내 머리를 때렸다.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깨달음. 애나가 중요하다는, 메리가 중요하다는 말. 혹은 이 책을 읽는 당신(넘어지지 않게 꼭 붙잡으시라)이 중요하다는 말.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자연을 더욱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것이 민들레 법칙이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계속 차를 몰면서 나는 이 넓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민들레들이 마침내 이 사실을 이해한 나를 향해 동시에 동작을 맞춰 고개를 끄덕여주는 모습을, 운전대 너머에서 내게 손짓을 하고 노란 꽃송이를 흔들며 나를 응원해주는 모습을 떠올렸다. 이제야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 할 반박의 말을 찾아냈다.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질척거리는 변명도, 죄도 아니다. 그것은 다윈의 신념이었다! 반대로, 우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만 하고 그 주장만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거짓이다. 그건 너무 음울하고 너무 경직되어 있고 너무 근시안적이다. 가장 심한 비난의 말로 표현하자면, 비과학적이다.
여전히 내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우리 모두는 헤드라이트와 희망을 켠 차를 타고 어디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다. 여전히 똑같은 텅 빈 지평선. 나는 우리의 지배자가 여전히 야멸차고 냉담하다고 생각했다. 저기 저 돌아서는 모퉁이에서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無라고 확신했다. 약속은 없다. 피난처도 없다. 희미한 빛도 없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든 상관없이.
헤더는 하고많은 사람 중에 코페르니쿠스를 예로 들었다. 그 시대 사람들이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면서 움직이고 있는 게 별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그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에 관해 생각하고, 별들이 매일 밤 그들 머리 위에서 빙빙 돌고 있는 천구의 천장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이 서서히 놓아버릴 수 있도록 수고스럽게 복잡한 사고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별들을 포기하면 우주를 얻게 되니까”라고 헤더는 말했다. “그런데 물고기를 포기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일단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연민이었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자연이 프린트된 커튼 뒤를 들춰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았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이 폭풍우는 짜증스럽기만 한 일일까? 어쩌면 그것은 거리를 혼자 차지할 수 있는 기회, 온몸을 빗물에 적셔볼 기회, 다시 시작할 기회일 수도 있다. 이 파티는 당신이 예상하는 것만큼 따분할까? 어쩌면 그 파티에서는 담배를 입에 물고 댄스플로어 뒷문 옆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친구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 친구는 앞으로 수년간 당신과 함께 웃고 당신의 수치심을 소속감으로 바꿔줄지도 모른다.
내가 세계를 이런 식으로 보는 데 익숙하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나의 확실성을—그러니까 나의 테디베어를—꼭 붙잡고 있고, 원망은 늘 그대로 남아 있으며, 나의 두려움은 늘 빵빵하게 차 있고, 지구는 납작하다. 하지만 그러다가 나는, 이를테면 인체에서 “사이질 interstitium”이라는 새로운 기관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읽는다. 늘 거기 있었지만 어째선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놓치고 있었던 것. 그러면 세계는 조금 더 벌어지며 열린다. 그리고 나도 다윈이 했던 것처럼 해야 한다는 것을 되새긴다. 우리의 가정들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실에 관해 궁금해해야 한다는 것을. 그 볼품없는 박테리아는 어쩌면 당신이 숨 쉬는 데 필요한 산소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을 그 단단한 가장자리에서 마지못해 뛰어내리게 했던 실연은 결국 더 좋은 짝을 찾게 해준 선물로 밝혀지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의 꿈들까지도 검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의 희망까지도… 어느 정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 열쇠를 돌리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은… 단어들을 늘 신중하게 다루는 것이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해골 열쇠를 하나 얻었다. 이 세계의 규칙들이라는 격자를 부수고 더 거침없는 곳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물고기 모양의 해골 열쇠. 이 세계 안에 있는 또 다른 세계.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고 하늘에서 다이아몬드 비가 내리며 모든 민들레가 가능성으로 진동하고 있는, 저 창밖, 격자가 없는 곳.
과학자들은 “긍정적 환상을 갖는 것이 목표를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나는 서서히,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터널 시야 바깥에 훨씬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게 됐다.
나는 따스함이 넘쳐나는 그녀의 허벅지를 움켜잡고 생각한다. 가장 희망적이었던 순간에조차, 나의 하찮은 뇌는 그녀만큼 한없이 도취시키는 존재를 꿈에도 결코 상상해내지 못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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