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ayeon
구의 증명 / 최진영 본문
23.10 밀리의 서재
- 저자
- 최진영
- 출판
- 은행나무
- 출판일
- 2023.09.20
울면서도 모르는 게 죄냐고 물었다. 이모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더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지금 이해할 수 없다고 묻고 또 물어봤자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모르는 건 죄가 아닌데 기다리지 못하는 건 죄가 되기도 한다고.
이모와 말하는 게 나의 유일한 놀이이자 사랑표현이었으니까.
그때 나는 세상에서 이모만을 사랑했다. 이모에게 내 사랑을 모두 쏟아부었고, 쏟아붓는 만큼 받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모는 나를 먹여살리기 위해 돈을 벌었다. 밤낮으로 부지런히 무언가를 만들어서 돈을 버는 것. 그것이 이모의 사랑표현이었으니까.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학교에 있을 때도 내내 구를 기다렸다. 만날 시간은 분명 정해져 있고, 그때가 아니면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 마음은 항상 대기 중이었다. 오 분, 삼십 분, 한 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심지어 구와 함께 있을 때에도 구를 기다리는 기분이었고, 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도 내가 구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함께 하던 어느 날 구와 나 사이에 끈기 있고 질펀한 감정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 우리의 모난 부분을 메워주는 퍼즐처럼, 뼈와 뼈 사이의 연골처럼, 그것은 아주 서서히 자라며 구와 나의 모나고 모자란 부분에 제 몸을 맞춰가다 어느 날 딱 맞아떨어지게 된 것이다. 딱 맞아떨어지며 그런 소리를 낸 것이다.
너와 나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네.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하겠네.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다만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랑에 가장 가까운 감정. 우리 몸에도 마음에도 그것이 들러붙어 있었고 그것은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얼마간은 그런 확신으로 구를 기다렸다.
또 얼마간은 이모 말을 따라하며 구를 기다렸다.
지나면 그뿐.
지나면 그뿐.
얼마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나는 결국 무엇이 지나가길 기다리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구를 기다리는 시간인지, 구인지.
그리고 또 많은 날 나는 사랑하면서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하고, 분명 살아 있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버린다. 그러니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지만, 사랑하고 쓴다는 것은 지금 내게 ‘가장 좋은 것’이다. 살다보면 그보다 좋은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더 좋은 것 따위, 되도록 오랫동안 모른 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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